- 발레리안(쥐오줌풀, 힐초·缬草)은 강한 수면제가 아니다. "빨리 잠들게 한다"는 근거는 약하고, "잠의 질과 깊이를 거든다"는 쪽에 근거가 더 실려 있다.
- 미국수면의학회는 권고하지 않지만, 이는 효과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처방을 권할 만큼 강한 임상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 한의학 본초서 《중화본초》에서도 "힐초 자체는 잠을 일으키지 않으나 졸음을 증강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발레리안이 강제로 재우지 않고 진정을 거든다는 현대 약리와 정확히 같은 그림이다.
- 힐초는 한의학적으로 심경(心經)과 간경(肝經)에 들어가 안신(安神)시키고 울체된 기를 풀어주는 방향을 가지므로, 스트레스로 긴장해 잠 못 드는 현대인의 불면에 결이 맞을 수 있다.
- 좋은 약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옛 문헌도 미독(微毒)을 명시했고, 다른 진정제와 함께 쓸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 결국 약 하나로 불면이 해결되진 않는다. 수면 리듬·생활습관이 바탕이고, 발레리안은 그 위에서 가벼운 불면을 거드는 역할이다.
불면으로 발레리안(valerian)을 검색해 보면 글마다 말이 다르다. 어떤 곳은 천연 수면제라며 칭찬하고, 어떤 곳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으니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작 먹어도 되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오늘은 이 발레리안을 두 갈래의 근거로 살펴보려 한다. 하나는 서양의 임상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한의학 본초학의 정리다. 흥미롭게도 발레리안은 서양 허브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 본초서에 힐초(缬草)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는 약재이기도 하다. 같은 식물을 두 갈래의 시선이 각각 어떻게 보았는지를 겹쳐 보면, 발레리안의 실제 자리가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먼저 짚어둘 것은 이름이다. 우리가 발레리안이라 부르는 것은 쥐오줌풀(Valeriana officinalis)의 뿌리이며, 한자 문화권에서는 힐초(缬草)라 한다. 발레리안, 쥐오줌풀, 힐초, Valeriana는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킨다.
발레리안이 신경을 가라앉히는 용도로 쓰인 역사는 짧지 않다.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은 양차 대전 시기의 영국이다. 1931년에 나온 약초학 고전 《A Modern Herbal》에는, 공습이 민간인의 지친 신경에 큰 부담이 되던 시기에 발레리안을 다른 단순한 약재와 함께 처방하니 놀랍도록 효과가 있어 심각한 결과를 막거나 줄였다는 당대의 기록이 실려 있다. 다만 이것은 통제된 임상시험이 아니라 당대 약초학자의 경험적 서술이므로, 효과의 증거라기보다 이 약이 오래도록 진정 목적으로 쓰여 왔음을 보여주는 배경으로 읽는 편이 옳다.

효과가 있다는 근거
발레리안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분명히 있다. 무작위 대조 시험들을 모아 분석한 한 체계적 고찰에서는, 16편·약 1,093명을 검토한 결과 수면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응답이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많았다. 개선 상대위험(relative risk)은 약 1.8로 보고되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해 두어야 한다. "발레리안이 잠을 잘 오게 한다"는 것과 "수면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며, 근거의 무게도 다르다.
먼저 잠드는 속도, 즉 수면 잠복기(sleep latency)를 단축한다는 근거는 의외로 약하다. 앞의 메타분석에서도 수면 잠복기를 보고한 연구가 아홉 편이나 있었지만, 데이터를 제시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라 하나로 통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분 단위로 본 네 편 가운데 두 편만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발레리안이 수면제처럼 빨리 잠들게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수면의 질이 좋아진다는 근거는 비교적 모인다. 21편·1,433명을 분석한 메타분석에서 발레리안은 주관적 수면의 질 지표(PSQI 점수)에 소~중등도의 효과를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수면다원검사(PSG)로 측정한 객관적 연구의 결과다. 발레리안은 객관적 수면 구조 전반을 위약과 뚜렷이 구분되게 바꾸지는 못했으나, 깊은 잠에 해당하는 서파수면(slow-wave sleep)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한 PSG 연구에서 서파수면에 들어가는 잠복기가 위약 21.3분에 비해 발레리안 13.5분으로 단축되었고, 장기 복용 후 서파수면의 비율도 늘었다.
정리하면, 발레리안의 근거는 "빨리 잠들게 한다"보다 "잠의 질과 깊이를 거든다" 쪽에 더 실려 있다. 다만 이 "수면의 질" 근거의 상당 부분이 환자가 직접 답한 주관적 설문에 기댄 것이고, 객관적 지표로는 깊은 잠 일부를 빼면 위약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은 함께 짚어 두어야 한다.
작용 기전도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발레리안 뿌리의 발레레닉산(valerenic acid)은 뇌의 GABA-A 수용체에 작용하여,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의 반응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ABA가 잘 작동하면 신경의 흥분이 가라앉고 몸이 진정된다.

효과가 없다는 근거
그런데 같은 무게로 반대편의 근거도 보아야 한다. 발레리안을 다룬 연구들은 대체로 방법론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사용한 용량, 제제의 종류, 복용 기간이 연구마다 제각각이어서 결과를 한데 모으기가 어려웠다. 앞서 말한 긍정적 결과에도 출판 편향(긍정적 결과가 더 잘 출판되는 경향)의 정황이 함께 지적되었다.
실제로 한 체계적 고찰은 발레리안을 두고 "안전하지만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결론지었다. 미국수면의학회 역시 만성 불면증 약물치료 가이드라인에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발레리안을 권고하지 않는다. 다만 이는 발레리안이 해롭다거나 효과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처방을 권고할 만큼 강한 임상 근거가 아직 쌓이지 않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렇다면 효과는 0인가
한 가지 짚고 갈 사실이 있다. 발레리안은 불면에 쓰이는 약초 가운데 가장 많이 연구되고 널리 쓰이는 축에 든다. 거의 40년에 걸쳐 60편이 넘는 연구가 쌓였고, 미국에서는 성인의 약 9%가 수면 보조로 한 번쯤 써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많이 쓰인다는 것이 곧 효과의 증거는 아니다.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보충제라는 점도 인기에 한몫한다. 다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면 이만큼 오래 연구와 선택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효과가 없다는 것과, 강한 수면제가 아니라는 것은 다른 말이다.
앞서 본 기전을 다시 떠올려 보자. 발레레닉산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가 결합하는 자리와는 다른 위치에서 GABA-A 수용체를 조절한다. 즉 발레리안은 수면제처럼 의식을 끌어내려 강제로 재우는 약이 아니라, 신경의 흥분을 부드럽게 가라앉혀 잠들기 쉬운 상태를 거드는 쪽에 가깝다. 효과의 크기가 크지 않게 측정되는 것도, 작용의 성격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본초학은 발레리안을 어떻게 보았나 — 《중화본초》의 힐초(缬草)
흥미로운 것은, 이 발레리안이 동아시아 본초학에서도 힐초(缬草)라는 이름의 약재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근거로 삼는 《중화본초(中华本草)》는 1999년에 편찬된 현대 본초서로, 옛 본초 문헌의 약성 지식과 현대의 화학·약리 연구를 한데 모아 집성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의 서술은 두 층으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성미·귀경·효능은 전통 본초학의 관점으로 정리한 것이고, 뒤에서 볼 약리 항목은 현대 실험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중화본초》는 발레리안을 패장과(败酱科) 식물 힐초(缬草)·흑수힐초·관엽힐초의 뿌리 및 뿌리줄기로 수록한다. 전통 본초학의 관점에서 정리된 성미와 귀경을 보면, 힐초는 맛이 맵고 쓰며 성질은 따뜻하고(辛·苦·溫), 심경(心經)·간경(肝經)에 들어간다. 효능은 안심신(安心神,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킴)·거풍습(祛風濕)·행기혈(行氣血)·지통(止痛)으로 정리된다. 주치(主治)로는 심신불안, 심계(心悸)와 불면, 장조(臟躁) 등이 꼽힌다.
눈여겨볼 것은, 본초학이 발레리안을 단순히 "잠이 오는 풀"이 아니라 신(神)을 안정시키는 안신약(安神藥)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힐초가 간경(肝經)에 든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하다. 한의학에서 간(肝)은 기를 뻗어 풀어주는 소설(疏泄)을 맡아, 스트레스로 기가 맺히면 간기(肝氣)가 울체된다고 본다. 힐초가 안심신(安心神)에 그치지 않고 행기혈(行氣血)로 울체된 것을 풀어주는 방향을 함께 가진다는 것은, 이 약이 단순히 신경을 가라앉히는 데 머물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긴장과 스트레스로 신경이 곤두서서 잠들지 못하는 유형, 오늘날 흔히 보는 그 불면에는 발레리안의 결이 특히 맞아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흥미로운 것은, 《중화본초》의 약리(藥理) 항목 — 앞서 말했듯 현대의 실험 연구를 정리한 부분 — 이 이 옛 약성 서술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책은 힐초의 약리를 이렇게 정리한다. 힐초 자체는 수면을 일으키지 않으나, 바르비탈(barbital)의 졸음 작용을 증강한다. 즉 단독으로 의식을 끌어내려 재우는 약이 아니라, 진정의 바탕을 깔고 다른 작용을 거드는 약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본 서양 기전과 정확히 같은 그림이다. 발레레닉산이 수면제와는 다른 자리에서 GABA를 거들 뿐 강제로 재우지 않는다는 현대 약리의 서술과, 힐초 자체는 잠을 일으키지 않으나 졸음을 증강한다는 본초서의 서술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성질을 가리키고 있다. 앞서 임상 근거에서 발레리안이 "빨리 잠들게 한다"보다 "잠의 질과 깊이를 거든다" 쪽에 더 실려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전하지만, 무해한 것은 아니다
발레리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에 속한다. 《중화본초》의 약리에서도 경구 반수치사량(LD₅₀)이 2.25g/kg로, 치료 안전역이 비교적 넓다고 본다. 일반적인 용량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약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천연이니 무조건 안전하다"는 통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같은 《중화본초》가 인용한 《사천중약지》는 힐초에 대해 약간의 독이 있다(有微毒)고 적는다. 약 자체에 약간의 독성이 인정되는 만큼, 과하게 쓰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졸음·두통·위장 불편이 나타날 수 있고, 다른 진정제나 수면제와 함께 쓸 때는 작용이 겹칠 수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정리하며
발레리안은 서양의 임상 연구에서도, 동아시아의 본초학에서도 강한 수면제가 아니다. 양쪽 모두 이 약을 신경의 흥분을 부드럽게 가라앉히는 온화한 안신약(安神藥)으로 그린다. 심한 불면을 한 번에 잠재우기에는 부족하지만, 지속적으로 차의 형태로 복용하여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울체된 기혈을 풀어주고 마음을 진정시켜 수면의 질을 높이는데는 도움이 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발레리안이든 다른 어떤 약이든, 그것 하나로 불면이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잠은 결국 하루 전체의 결과로 찾아온다. 일정한 시각에 자고 일어나는 리듬, 낮의 적절한 활동과 햇빛, 잠들기 전 카페인과 화면을 멀리하는 습관, 그리고 마음의 긴장을 더는 일, 이런 바탕이 갖춰지지 않으면 어떤 약도 제 몫을 다하기 어렵다. 발레리안은 그 바탕 위에서 가벼운 긴장과 얕은 불면을 거드는 역할에 어울리는 약이다. 약을 그 자리에 두고 생활을 함께 살필 때, 발레리안은 비로소 합리적인 선택지가 된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안신(安神)계열의 한약재인 산조인과 발레리안이 어떻게 다른지를 다루어 보려 한다. 발레리안의 한국 내 식약처 규제 상태와 복용법은 별도의 글에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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